
옻나무는 중앙아시아 고원지대가 원산지이며 동양에 분포되어 있는 특산물로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4000년 전부터 이를 재배하여 왔다. 예로부터 옻칠은 국가적으로 매우 소중한 도료로 애용하여 내구력이 필요한 모든 기물에 옻이 사용되었으며 이를 기초로 칠기문화가 발달하였다. 옻나무는 전 국토에서 재배가능하나 기후적, 지형적 및 토질 등의 조건에 알맞은 주산단지로 일제시대부터 평북 태천. 충북 옥천. 경남 함양. 경기 부천. 강원 원주. 전남 구례. 전남 장성. 나주. 곡성 등지에서 옻나무 재배가 성행하였다. 그 중에서도 강원도 원주시가 옻나무 생육에 적합한 환경조건(토의)을 갖추고 있어 옻 생산지로 잘 알려져 있고 가장 많은 옻액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 일본 및 열대지방인 베트남. 태국 등에서 많이 재배 생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위도상 적지는 전국적으로 가능하며 북으로 함경북도 청천강 유역까지 재배할 수 있다. 옻나무 주요산지의 특성을 보면 여름에 일조량이 많고 겨울에 옻나무 표피가 동해를 입지 않는 정도의 기온이면 재배 가능하다.
옻나무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수고 12m 지름 40cm 까지 자란다. 줄기는 곧게 올라가 층층이 가지를 수평으로 뻗어서 수형을 이루며 잎은 기수 1회 우상 복엽이며 잔가지는 굵고 잿빛을 띤 노란빛이며 처음에는 잔털이 있으나 곧 없어진다. 잎은 서로 어긋나게 자리하며 길이 25~40cm로서 9~13매의 잎 조각으로 이루어진 깃털 꼴 이다. 잎 조각의 생김새는 달걀 꼴 또는 타원형 꼴에 가까운 달걀 꼴로서 길이는 10cm 안팎이고 끝은 뾰족하며 밑동은 둥글며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없이 밋밋하다. 잎겨드랑이에서 자라난 15~20cm 길이의 꽃대에 많은 꽃이 뭉쳐 아래로 쳐지며 암꽃과 수꽃이 하나의 꽃대에 섞여 피며 다섯 장의 꽃잎을 가졌고 빛깔은 노란빛을 띤 푸른빛이며 꽃의 지름은 5mm 안팎이며 개화 시기는 6월이다. 꽃이 피고 난 뒤에는 지름이 6~8mm의 둥근 열매를 많이 맺고 익으면 10월에 연노란빛으로 물들여 지면서 윤기가 난다.
전통 및 산업 공예, 약용, 식용, 특수접착제 등에 쓰인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칠기를 사용하였고 현재도 칠기의 제작을 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나전칠기는 우리나라 고유의 공예품으로 세계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옻나무의 수액을 ‘옻(칠) 또는 옻(칠)액’이라 하는데, 이 옻은 나전칠기의 제조나 가구의 도료로 이용된다. 그 외 특수접착제, 비행기, 선박도료 등에 쓰인다. 이러한 이유로 4000년전부터 칠기문화가 발전하여 생활용품, 각종 예술품 및 금속등에 널리 사용되어져 왔다. 최근에는 이러한 옻의 특성을 이용하여 각종 방오(防汚)도료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중에 있는가하면, 옻나무 추출물 중에 Urushiol과 Flavonoids는 항암효과나 생리활성물질로서 효과가 인정되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옻은 한방에서 '건칠(乾漆)'이라 불리며 오랫동안 약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옻은 장(小腸)을 잘 통하게 하고 기생충을 죽이며 피로를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본초강목에서는 "풍을 다스리고 피를 맑게 하며, 특히 어혈 제거와 혈액순환에 효과가 크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옻의 핵심 성분인 우루시올(Urushiol)에서 추출한 MU2 성분은 시판 항암제보다 높은 항암 효과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으며, 혈액암 및 폐암 세포 억제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장을 따뜻하게 하여 만성 위장병, 소화불량을 완화하고 기생충을 제거며 간의 지방 축적을 억제하여 지방간 개선 및 해독 작용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피를 맑게 하고 어혈(뭉친 피)을 풀어주어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여성의 생리통이나 생리불순 등 부인병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마지막으로 강력한 살균 작용으로 체내 염증을 줄이고 관절염 치료나 요로결석 개선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될 수 있는 한 동북쪽이 막혀서 겨울철의 찬바람을 막을 수 있는 따뜻한 곳으로 햇볕이 잘 쪼이고 통풍이 잘 되는 곳이어야 한다.
토심이 깊고 배수가 잘 되는 약알칼리성의 토질이나 비옥한 사질양토가 좋으나 잔자갈이 드문드문 섞여있는 곳도무방하다. 대체로 부식토가 밀려내려서 퇴적된 산기슭이나 다소 비탈진 밭. 밭뚝. 제방. 하천변. 도로. 사면 등이 적합하다.
겨울철 휴면기에는 비가 적고 기온이 높으며 기온의 교차가 적은 곳이라야 하며 봄철 눈이 트기 시작할 때에는 날이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는 곳이 좋으며 6월 상순경의 개화기에는 기온이 오르내리고 장마가 계속되어 결실을 방해하는 기후가 좋다. 특히 6~8월의 옻을 채취하는 시기에는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은 곳이 좋다. 옻나무 재배에 적당하지 못한 조건은 진흙땅. 산성이 강한 땅. 물이 잘 고이는 습지. 강한 바람이 자주 부는 곳 등이다.
특히, 바람은 옻액 생산에 큰 영향을 주고 있어 초속 15m 이상의 강한 바람이 한 번 지나가면 그 후 약 1개월 동안은 옻의 수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기 때문에 아무리 토질이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바람이 심한 곳은 부적당하다.
옻나무의 번식에는 종자번식과 분근에 의한 방법이 있다. 종자에 의한 방법은 종자 채취 발아촉진 등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며 파종 후 1년만에 묘목 생산이 가능하다. 부근에 의한 방법은 뿌리를 직접 끊어다가 양묘함으로 이듬해에 바로 심을 수 있으나 묘목의 생산량이 적다.
생옻은 옻나무 줄기 껍질에 상처를 내어서 얻는다. 옻액을 채취하는 긁기낫으로 외피에서 내피 사이까지 상처를 내어 수피의 옻액구가 절단이 되면 그 곳에 축적되어 있던 옻액을 채취한다. 옻 품질은 채취시기에 따라 다르다. 초칠(6월 초순에서 7월 초순 사이에 채취)이나 말칠( 8월 하순에서 10월 초.중순 사이에 채취)보다 성칠(7월 중순에서 8월 중순 사이에 채집)이 채집량도 가장 많고 품질도 좋다. 채취시기의 중심은 초.중.말복을 기준으로 초복일주일전 주부터 말복일주일후 주까지 성칠기준을 둔다.
옻칠은 동양권에서는 이미 4천여년 전부터 칠기의 도료로서 사용되었다. 단순한 생활용품에서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금속, 목기 등 다양한 종류의 칠기류에 도료로 널리 사용되어 왔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화학적 도료 생산의 공장생산이 보급되고, 특히 석유화학공업의 발달로 사용이 간편하고 가격이 저렴한 합성수지도료가 대량생산되면서 옻칠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료로서 옻칠의 생산과 보급은 20세기 후반에는 거의 쇄락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물리화학적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산업기술의 발전 전반에 대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환경 우선 개발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시대전 조류가 그것이다. 최근 옻칠이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것이 무공해 자연도료이고 환경친화적인 도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며 그와 더불어 광범위한 활용의 가능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도료업계에서는 합성수지도료가 제조과정과 기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첨가하는 각종 보조 화학재료에 의해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는 문제가 나타난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친환경적인 도료개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옻칠의 가치가 새로이 발견되었다. 옻칠은 어떤 합성수지도료도 가지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며, 전통적인 공예품 도료의 용도 이외에 활용성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테면 해저 케이블, 선박, 비행기따위를 비롯하여 각종 현대적 기기의 산업용 도료로서 이용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내구력이 필요한 모든 기물(器物)에 천연도료인 옻칠을 사용하였으며, 이를 기초로 독특한 칠기문화를 꽃피웠다. 중국이 조칠(彫漆)(옻칠한 표면에 산수, 화조 인물을 보조하는 방법), 일본이 금 은분을 칠에 배합하여 그림을 그리는 금분화칠법(마끼에)을 독특하게 발전시킨 예처럼 우리는 색 옻칠로 그림문양을 그린 칠화칠기(漆畵漆器)를 발전시켰고,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내 기물에 붙인 뒤 옻칠로 마감하는 나전칠기(螺鈿漆器)를 창조해 내었다. 옻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 등 극동 세 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귀중한 약용 및 천연도료 식물자원이었다. 우리의 경우, 신라시대에 이미 옻나무 재배를 권장했으며, 관직으로 식기방(飾器房)이란 칠전(漆廛)이 경덕왕 이전에 있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에서 옻나무 심기를 적극 권장했으며, 옻나무 세금도 부과했다. 조선시대에도 옻나무에 대한 나라의 적극적 관여는 계속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12년에는 각 마을마다 옻나무를 자르고 심는 수를 조사 보고하도록 하고있다. 이러한 기록처럼 옻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알뜰하게 가꾸고 현명하게 이용했던 산림자원이었다. 일반 인공 화학도료는 건조한 후에 색이 차츰 퇴색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옻칠은 비록 처음에는 색이 잘 나타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발색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ㅁ복기에 옻칠을 한 경우, 처음 수년 동안에는 목기의 나무결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지만, 몇 년이 지난 이후에는 차츰 발색을 하므로 나무결의 제색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수천년 만에 출토된 유물들이 오늘도 생생하게 제색을 발하는 이유도 자연도료인 옻칠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물 중 칠기가 출토되고 있음을 미루어볼 때 이미 4천년전에 중국에서 옻칠이 천연도료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도 평안남도 대동군 용인면 남정리 낙랑시대의 고분에서 옻상자 채화칠협이 출토된 것을 미루어볼 때, 이미 2천여년 전에 옻칠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출토된 병기·관곽·가구·기물을 통해서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정제칠·채색칠·건칠이 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나전칠기가 우세하여 순 옻칠제품이 많지 않으나 그 전통은 30~40년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한 때 5만 명이 넘었던 나전칠기 기능인의 수가 오늘날은 5천명이 채 안되는 현실처럼 수천 년 동안 이 땅에 꽃피웠던 칠기문화는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산업화의 여파로 급격하게 변한 주거생활 양식은 서양식 가구를 유행시켜 옻칠의 쇠퇴를 가속화시켰고, 옻칠 대용품으로 개발된 캐슈라는 인공도료는 칠기산업의 기반을 더욱 위축시켰다. 칠기산업과 관련지어 안타까운 사실은 옻액의 가공기술이 없어서 옻액을 싼값에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에서 가공한 칠액을 비싼 값에 역수입하고 있는 점이다. 칠기를 다루는 기능인들은 우리의 칠 정제기술이 일본의 40퍼센트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일본의 옻칠 정제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한 때 훌륭한 칠기문화를 보유했던 우리의 칠 정제기술이 오히려 퇴락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30여 년 동안 수천 년의 전통을 가진 칠기문화를 계승 발전시키지 못한 반면 일본은 지난 1백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옻칠 연구를 계속하여 칠기문화를 대중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칠기문화의 성쇠에 대한 두 나라의 차이는 나무제품을 실생활에 여전히 많이 사용하는 일본의 문화적 배경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옻칠은 우리 민족 전통공예의 정수였다. 신비의 천연도료 옻칠을 살려 현대화의 그늘에 묻혀 사라질 위기에 있는 칠기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옻칠을 채취하는 방법에는 살소법, 양생법, 화칠법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주로 6월~10월 초.중순에 개량형 살소법을 활용하여 채취한다. 상황에 따라 12월또는1월 화칠법을 활용하여 채취하며 양생법은 국내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가슴높이지름이 20cm이상이 되는 옻나무에 대하여 고사되지 않도록 적당량의 옻칠만을 2~3년에 1회씩 채취하는 방법으로 주로 중국 남부, 대만, 베트남 등에서 사용되며,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화학적으로 옻칠도막은 바깥쪽의 우루시올 고분자가 수분의 침투를 방지하고, 안쪽의 다당류가 산소의 침투를 방지하여 내부가 산화되는 것을 막는다. 그리하여 물, 유기용매, 강산 등에도 쉽게 부식되거나 썩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옻칠도막은 형성하고 있는 입자가 층층이 쌓여 있어 외부의 입자층이 파괴되어도 마지막의 입자층이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원래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다.
도장관련 도구 및 재료 : 귀얄, 칠주걱, 여과지, 정반, 건조장, 연마도구, 황토분, 숯가루, 용제 등 나전관련 도구 및 재료 : 자개, 실톱, 상사기, 상사칼, 칠칼 등 칠화관련 도구 및 재료 : 칠화용붓, 혼련기, 안료(무기안료, 유기안료 등)
옻칠은 목재, 금속, 가죽, 도자기, 대나무 등 어디에나 도장이 가능하며, 최근에는 플라스틱이나 M.D.F로 백골을 제작한 후 옻칠을 하기도 한다.
나전칠기 또는 칠화칠기라는 것은 필기표면에 문양을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나전이나 칠화의 장식기법을 제외한 도장의 과정은 거의 같다
백골에 생칠 메기기 생칠과 송정유를3:1로 배합하여 칠한 다음 건조시킨다. 고수 메우기곡수로 백골의 틈이나 홈을 메워 넣은 다음 건조시킨다. 베 바르기 호칠을 약 0.5mm두께(베올이 보일 정도)로 바른 다음 베를 붙인다. (호칠 : 생칠과 찹쌀풀을 1:1로 배합한 것.) 숯가루 바르기 숯가루를 생칠, 찹쌀풀과 1:1:1로 배합하여 베올이 안보이도록 바른다. 토회칠 바르기 토회칠을 숯가루면이 보이지 않는 두께로 바른다.(2회) (토회칠 : 황토분을 물에 적셔 생칠과 1:1로 배합한 것) 나전붙이기 생칠 메기기 나전 위에 묽은 생칠을 바른다. 평탈 토회칠 바르기 토회칠 바르기와 동일한 순서로 2회 실시한다. 단, 나전 두께에 맞춰 토회칠을 바르고 자개의 틈 사이를 완전히 메우고 물갈기를 한다. 이 때 나전의 문양이 선명히 나타나도록 하여야한다. 초칠하기 흑칠을 송정유와 3:1 비율로 배합하여 칠하고 건조시킨다. 숯이나 사포로 나전이 나올 때까지 물갈기를 한다. 중칠하기 초칠과 동일한 과정으로 실시한다. 상칠하기 흑칠을 송정유와 3:1로 배합하여 1~3일간 삭힌 다음 칠하고 건조시킨다. 칠긁기칼로 나전이 나오도록 긁어낸다. 연마용 숯이나 사포로 물갈기를 한다. 광내기 콩기름과 미세한 토분을 혼합하여 솜 또는 인모에 묻혀 문지른다. (콤파운드, 브라솔 등으로 대용하기도 한다.) 접칠하기 희석제와 배합한 생칠을 솜에 뭍혀 바르고 30분이 지나면 솜으로 닦아 낸다.
나전칠기는 바다의 전복, 소라, 조개의 껍질이 표현하는 자연의 색상을 이용하여 표면을장식하는 칠기를 말하며, 고려시대 상감청자와 함께 귀족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나전을 붙이는 방법은 크게 줄음질과 끊음질로 나뉜다.
옻칠에 안료를 혼합하여 색을 만들어 칠면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원하는 색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주산 옻칠액이 최고의 품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이유는 우루시올의 함량이 일본산이나 중국산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우루시올의 농도는 옻칠액의 품질을 좌우 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루시올의 농도가 높으면 칠을 할 경우 도막(塗膜)이 튼튼하고, 투명성이나 광택도가 좋기 때문에 옻칠산업이 발달된 일본에서조차 원주산 옻칠액을 최고로 친다. 원주에서 생산되는 옻칠액 은 타지역에 비해 품질이 우수하다고 널리 알려져 왔으며, 실제로 1939년에 실시한 성분분석 결과를 보면 원주산 중급옻칠액의 경우 옻칠액의 품질을 좌우하는 우루시올 함량이 72.5%로 타지역의 옻칠액에 비해 많이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일본에서 꾸준히 원주옻칠액을 수입해 간 것은 이러한 원주옻칠액의 우수성 때문이었다. 1987년(사)일본칠공협회에서 발간하는 간행물인 『日本漆工』을 보면 품질이 우수한 옻칠액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원주가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원주의 옻칠은 그 품질의 우수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양적인 면에서도 원주는 국내 최대의 옻나무 주산단지입니다.
- 조선전기부터 옻나무가 재배 생산된 것으로 추정
- 일제시대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옻나무 증식 10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원주시 판부면에 옻나무 재배 시험지를 설치하고 일본식 개량 옻칠채취법인 살소법(殺搔法)을 보급
1957~1978 (사)원주칠공예주식회사 _ 원주의 옻 자원을 바탕으로 한국옻칠 산업과 공예 문화를 발전시킨 국내최초 유일의 옻칠전문 민간기업으로 주요사업은 108만평 규모의 옻나무 조림사업, 옻칠채취 및 옻칠정제 당시 장인(김봉룡, 심부길, 천상원, 홍순태등)들을 초빙하여 나전칠기 등 공예품 제작·판매 원주를‘옻칠의 중심지’로 만드는 계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