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CQUERED
COMMUNITY
CENTER

김봉룡(金奉龍) 선생님

국가지정제 10호 중요 무형문화재 나전장 기능보유자 (1902.1.30~1994.9.2)

1902년 1월 30일(음) 경남 충무시 도천동에서 金如才를 부친으로 兪又壽를 모친으로 하여 태어났다. 김봉룡은 10세때 『통영갓』공방에 입사하여 5년 동안『통영갓』제작일을 배웠다.

1919년 통영군청 산하 상,하칠공방에 공원으로 입사하게 되어 나전칠기의 명인 박정수로부터 나전칠기 기초를 배웠으며 후일 통영칠기 주식회사에 입사하였는데 여기에서 나전칠기계의 대가 전성규를 만나 본격적으로 나전칠기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1920년 일본 高岡市(다까오까시) 소재(조선나선사)로 초빙되어 가는 전성규를 따라 1년간 도일 하였으며 1922년 귀국하여 서울 종로구 삼천동에 전성규씨가 공방을 차리는데 함께 일을 하였다.

1924년 일본 京都市(교토시) 주최 세계 박람회에 문고를 출품하여 수상한 것을 계기로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장식공예품 박람회에 대화병을 출품하여 은상을 수상하였으며 1927년 일본 동경 우량 공예품전에 문고를 출품하여 금패를 받는 등 이미 오래전부터 해외활동을 한 유일한 나전칠기 장인이다.

1930년 서울에서 고대미술 나전칠기공예소를 설립 자영하였으며 1934년 제1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것을 비롯하여 1944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이르기까지 계속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51년 통영군 나전칠기 강습소에 강사로 근무하다가 1956년 경남 나전칠기 기술양성소 부소장에 취임하였다.

1961년 국전 초대작가로 초빙되어 출품하였으며 서라벌 예술대학에서 나전칠기공예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1996.6.29 국가지정 제10호 중요무형문화재가 되었으며 1969년 강원도 원주에 나전칠기, 이조목기 연구소를 설립 마련하였으며 1975년 국전초대작가가 되었다. 한국 나전칠기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이 바로 김봉룡이라 할 수 있다.

1919년 통영에서 박정수, 전성규를 만나 나전칠기 기술을 배울 때까지는 순수 우리 기법인 기구와 도구로 줄음질, 끊음질을 배웠으나 1920년 일본을 다녀오면서 시계방에서 사용하는 금속판을 썰어내는 손잡이톱을 보고 이것을 자개 오리는데 활용하게 되었는데 근래에 와선 이것을 간편화된 줄음깃법이라 불리게 되었다. 즉 조선시대 나전칠기기법은 선이 거칠고 투박하며 문양도 사군자, 십장생, 당초문 일색이며 거의 빈공간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김봉룡의 나전칠기 방법은 간결하며 대단하리만치 빈공간이 많고 당호문양의 잎새 어그러집은 가히 천하일품이라 아니할 수 없을 정도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는 1994년 9월 2일 타계할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나전칠기 공방에서 작업하다가 쓰러진 보기 드문 장인 정신의 소유자이며 그의 후계자 이형만이 1996.12.10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주칠2층농
박쥐무늬팔간반
당초무늬꽃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