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은 동양권에서는 이미 4천여년 전부터 칠기의 도료로서 사용되었다. 단순한 생활용품에서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금속, 목기 등 다양한 종류의 칠기류에 도료로 널리 사용되어 왔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화학적 도료생산의 공장생산이 보급되고, 특히 석유화학공업의 발달로 사용이 간편하고 가격이 저렴한 합성수지도료가 대량생산되면서 옻칠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료로서 옻칠의 생산과 보급은 20세기 후반에는 거의 쇄락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물리화학적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산업기술의 발전 전반에 대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환경 우선의 개발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시대전 조류가 그것이다. 최근 옻칠이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것이 무공해 자연도료이고 환경친화적인 도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며 그와 더불어 광범위한 활용의 가능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도료업계에서는 합성수지도료가 제조과정과 기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첨가하는 각종 보조 화학재료에 의해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는 문제가 나타난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친환경적인 도료개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옻칠의 가치가 새로이 발견되었다. 옻칠은 어떤 합성수지도료도 가지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며, 전통적인 공예품 도료의 용도 이외에 활용성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테면 해저 케이블, 선박, 비행기따위를 비롯하여 각종 현대적 기기의 산업용 도료로서 이용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내구력이 필요한 모든 기물(器物)에 천연도료인 옻칠을 사용하였으며, 이를 기초로 독특한 칠기문화를 꽃피웠다. 중국이 조칠(彫漆)(옻칠한 표면에 산수, 화조 인물을 보조하는 방법), 일본이 금 은분을 칠에 배합하여 그림을 그리는 금분화칠법을 독특하게 발전시킨 예처럼 우리는 색 옻칠로 그림문양을 그린 칠화칠기(漆畵漆器)를 발전시켰고,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내 기물에 붙인 뒤 옻칠로 마감하는 나전칠기(螺鈿漆器)를 창조해 내었다. 옻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 등 극동 세 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귀중한 약용 및 천연도료 식물자원이었다. 우리의 경우, 신라시대에 이미 옻나무 재배를 권장했으며, 관직으로 식기방(飾器房)이란 칠전(漆廛)이 경덕왕 이전에 있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에서 옻나무 심기를 적극 권장했으며, 옻나무 세금도 부과했다. 조선시대에도 옻나무에 대한 나라의 적극적 관여는 계속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12년에는 각 마을마다 옻나무를 자르고 심는 수를 조사 보고하도록 하고있다. 이러한 기록처럼 옻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알뜰하게 가꾸고 현명하게 이용했던 산림자원이었다. 일반 인공 화학도료는 건조한 후에 색이 차츰 퇴색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옻칠은 비록 처음에는 색이 잘 나타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발색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ㅁ복기에 옻칠을 한 경우, 처음 수년 동안에는 목기의 나무결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지만, 몇 년이 지난 이후에는 차츰 발색을 하므로 나무결의 제색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수천년 만에 출토된 유물들이 오늘도 생생하게 제색을 발하는 이유도 자연도료인 옻칠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물 중 칠기가 출토되고 있음을 미루어볼 때 이미 4천년전에 중국에서 옻칠이 천연도료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도 평안남도 대동군 용인면 남정리 낙랑시대의 고분에서 옷상자 채화칠협이 출토된 것을 미루어볼 때, 이미 2천여년 전에 옻칠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출토된 병기·관곽·가구·기물을 통해서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정제칠·채색칠·건칠이 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나전칠기가 우세하여 순 옻칠제품이 많지 않으나 그 전통은 30~40년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한 때 5만 명이 넘었던 나전칠기 기능인의 수가 오늘날은 5천명이 채 안되는 현실처럼 수천 년 동안 이 땅에 꽃피웠던 칠기문화는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산업화의 여파로 급격하게 변한 주거생활 양식은 서양식 가구를 유행시켜 옻칠의 쇠퇴를 가속화시켰고, 옻칠 대용품으로 개발된 캐슈라는 인공도료는 칠기산업의 기반을 더욱 위축시켰다. 칠기산업과 관련지어 안타까운 사실은 옻액의 가공기술이 없어서 옻액을 싼값에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에서 가공한 칠액을 비싼 값에 역수입하고 있는 점이다. 칠기를 다루는 기능인들은 우리의 칠 정제기술이 일본의 40퍼센트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일본의 옻칠 정제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한 때 훌륭한 칠기문화를 보유했던 우리의 칠 정제기술이 오히려 퇴락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30여 년 동안 수천 년의 전통을 가진 칠기문화를 계승 발전시키지 못한 반면 일본은 지난 1백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옻칠 연구를 계속하여 칠기문화를 대중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칠기문화의 성쇠에 대한 두 나라의 차이는 나무제품을 실생활에 여전히 많이 사용하는 일본의 문화적 배경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옻칠은 우리 민족 전통공예의 정수였다. 신비의 천연도료 옻칠을 살려 현대화의 그늘에 묻혀 사라질 위기에 있는 칠기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